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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3-25 (금)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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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치가 한국病이다]<1> ‘생존’에 목맨 정치인 ― 여의도의 트랜스포머
 
소신발언 초선을 중진이 불렀다 “그러다 망가진 자 많다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 18대 국회는 2008년 출범 첫해부터 ‘망치국회’라는 오명(汚名)까지 들으며 폭력국회의 적나라한 몰골을 드러낸 이래 국민의 걱정을 덜어주기는커녕 ‘국민을 걱정하게 만드는 국회’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봇물 터지듯 했던 ‘정치개혁’ 구호는 오간 데 없고 자신들의 밥그릇과 직결되는 정치자금 수입과 세비, 각종 수당 등을 늘리는 데만 열심이다.

거대 노조의 영향력이 영국의 발전을 막아 고비용과 저효율의 상징인 ‘영국병(英國病)’을 낳았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정치가 바로 ‘한국병(韓國病)’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여의도는 이제 세계 10위권 경제에 걸림돌 노릇을 하는 ‘그들만의 고립된 섬’이 돼버렸다.

동아일보는 5회에 걸쳐 2011년 한국정치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무능 정치’ ‘비효율 정치’의 진원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본다. 》

그는 촉망받던 인권변호사였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흔히 말하는 ‘KS마크’다.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을 하다가 요시찰 인물이 돼 강제징집됐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30회)에 합격한 그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으로 각종 시국사건의 변론을 도맡으며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라는 타이틀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 얘기다. 그는 16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한 이래 내리 3선을 했다. 초선의원 시절 스마트하면서도 합리적이고 유연한 성품 때문에 당시 탈레반이라 불린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그룹과 비교되곤 했다. 한 386 인사는 “당시 이 의원이 민주당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것을 의심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는 ‘좌충우돌’의 대명사가 됐다. 2008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이명박의 졸개”라고 막말을 퍼부어 국감 파행을 불렀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장을 맡아서는 조정과 타협보다는 갈등과 싸움을 확산시켰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교과위는 회의조차 열지 않는 18대 국회 최고 ‘불량상임위’로 낙인찍혔다. 당시 이 의원은 “수적 우위에 있는 여당에 맞서 위원장이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조차 “이 의원이 ‘진보의 기수’로 튀고 싶은 마음에 돌출행동을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의 한 재선의원은 “모든 것을 다 갖춘 이 의원이 한건주의에 빠지고 막말정치를 하는 것을 보면서 대한민국 정치가 너무 병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 당론과 계파에 주눅 든 ‘한때의 엘리트’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선출된 권력이 권력을 남용하는 동안 국민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많은 문제가 길가에 쌓여 간다”고 했다. 이 말을 남긴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 아니라 쌓아 놓는 적치장이 되고 있다.

2009년 2월 국회에서 열린 현인택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여당 소속으로는 유일하게 현 장관 임명에 반대했다. 그는 비록 초선이었지만 미국 하버드대를 나와 헤럴드미디어 사장을 지냈고 밀리언셀러 ‘7막7장’의 주인공이었다.

홍 의원은 “국방부 장관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 통일부 장관이 돼선 안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인사청문회가 끝난 뒤 한 중진 의원은 그에게 “공부도 많이 하고 소신도 강한 당의 재목(材木)”이라고 치켜세우더니 40여 분 동안 ‘소신만 앞세우다 망가진 선배들’의 사례를 줄줄이 들려줬다.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행정고시 수석 합격, 외무고시 차석 합격의 ‘고시 3관왕’으로 유명한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 대한민국의 최고 수재로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누구보다 인지도가 높지만 여의도 정치에선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2009년 당내 원내대표 선거에서 낙선한 모 의원을 지원했다가 당직에서 배제됐던 쓰디쓴 경험도 ‘관망’의 한 이유다. 그는 “국회에 들어와 지난 3년간 정치는 절대적으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재선이 되고 삼선이 되면 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자위했다.

하지만 선수가 올라간다고 게임의 룰이 바뀔까. 지난달 7일 오후 국회에선 한나라당 친이(친이명박)계 의원 10여 명이 머리를 맞댔다. 다음 날 개헌 논의를 위해 열리는 의원총회에 앞서 입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각자 중점적으로 전개해야 할 논리까지 분담했다. 이날 한 의원은 “무슨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각자의 의견까지 정해야 하느냐”며 혀를 찼다.

○ 지역 앞엔 ‘대쪽’도 없다


계파보다 의원들을 움직이는 더 강력한 힘은 지역이다. 이달 말 입지 선정을 앞둔 동남권 신공항 논쟁은 단적인 예다. 부산 가덕도가 최적이라는 부산 의원들과 경남 밀양이 최선이라는 대구·경북·경남 의원들의 비난전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부산 영도구가 지역구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동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주장하며 스스로 “정치생명을 걸었다”고 말한 것도 지역주의의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인 가운데 누구보다 소신 발언을 하는 이는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다. 유권자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 가운데 종교를 정면으로 비판한 거의 유일한 정치 지도자다. 이런 점 때문에 소신 있는 원로 정치인으로 최근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내며 ‘대쪽’ 이미지로 정치권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또 지역주의와 계파, 금권선거로 상징되는 ‘3김 시대’와의 결별을 선언하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정치권에 몸담으며 ‘차떼기 당’, ‘제왕적 총재’라는 오명 속에 정치인으로서의 1막을 마감했다. 이어 자신이 맞서 싸우려 했던 지역주의에 기대 충청의 맹주로 지역당을 만들어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각종 현안에 누구보다 공정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나 세종시 등 지역 현안이 떠오르면 지역 정치인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유다.

한 초선의원의 말이다. “무한한 소신과 약간의 계산으로 정치권에서 성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난 3년, 남은 건 무한한 계산과 약간의 소신뿐이다. 삼권분립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의원의 소신이 담긴 법안은 폐기되기 일쑤고 정부의 ‘청부입법’은 최우선 처리된다. 이걸 입법권이라 할 수 있는가. 의원들을 독립된 헌법기관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blog_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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