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강재 소개각종 소송강제집행 등인터넷등기등  기답변서게시판법률상담실영혼의 샘참  고유관기관업무관련



B여사는 소도시의 재래시장에서 의류소매상으로 30년 경력을 굳힌 50대 여자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었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이웃의 신망도 좋았고 가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는 모범시민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게 단골손님인 C의 권유를 거절하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는 함정에 빠져들고 말았다. 좋은 건물이 있는데 그곳에 투자하면 좋은 값으로 매도할 때 수익을 많이 나눠받게 된대요. 물주도 확실하고 담보도 든든해요. 걱정 마세요. C는 B여사가 알토란처럼 모아놓은 2억 원 가량의 노후자금을 벌써부터 냄새 맡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C는 인근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3층 건물로 B를 데려갔다. 봐. 멋진 곳이야. C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한눈에 건물의 입지나 외양이 썩 좋아보였다. 1층은 상가이고 2층과 3층은 주택으로 신축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세입자가 들지 않아 깨끗했다. 근처 부동산에 문의해보니 건물의 시가는 6억 원이었는데 한창 부동산 경기가 오를 때여서 언제 8억~10억 원으로 뛸지 모른다고 했다. 다만 등기부에 5억 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건물주 A가 무슨 사업을 하는데 자금이 좀 필요하다면서 3억 원 정도만 융통을 해주면 A가 소유하고 있는 다른 깨끗한 부동산에 투자금 1.5배의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고 이 건물이 매각되면 차익의 30%를 지급하되, 건물이 매각될 때까지는 투자금에 대해 매월 1%의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제안을 했다. 그 건물은 A가 대표이사로 있는 P회사 소유로 되어 있었다.  

가만히 계산을 해보니 만일 건물이 공인중개사의 말처럼 10억 원 정도에 팔린다면 원금 외에 1억 2천만 원의 배당을 받을 수 있고, 건물이 매각될 때까지 이자만으로도 월 300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은퇴를 한 후 사용할 자금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B는 좋은 투자처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2억 원 외에 친구 둘을 끌어들여 1억 원을 더 만들었다. 건물주는 약속대로 5년 전에 시가 10억 원에 구입했다는 토지 5필지에 대하여 B여사 앞으로 4억 5천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었다. 그 토지에는 3억 원의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돈을 건넨 지 3개월 만에 문제가 터졌다. A의 다른 채권자 D가 B를 상대로 사해행위취소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D는 A에게 현금 10억 원을 빌려주었는데 앞의 토지 5필지에 선순위 근저당권를 설정해주기로 약속해놓고 두 사람이 통정하여 B에게 먼저 설정을 했다는 것이었다. 소장을 받아든 B는 무슨 일인가하고 A에게 문의를 했지만 A는 태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내가 다른 담보를 제공했는데도 저 사람, 공연히 트집을 잡는 거예요. 토지주 A가 너무 다정히, 힘 있게 큰소리를 치는 바람에 B는 굳게 믿어버렸다. 사실 사해행위가 뭣인지 그걸 취소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마침 시어머니가 심장병으로 입원을 하는 바람에 병 간호를 시작하게 되어 정신을 놓고 살았다. 간혹 소송생각이 나긴 했지만 그때마다 A는 B에게 시어머니 간호나 잘 하라며 B에게 전혀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경을 헤매는 시어머니 곁에서 정성을 다했지만 그 보람도 없이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런데 초상을 치르고 돌아온 그 다음날이었다. 법원에서 판결문이 도착했다. 채권최고액 4억 5천만 원의 근저당권을 말소하라는 피고 패소판결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던 A는 그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늘이 노랬다. 자신의 돈 2억 원도 문제였지만 친구들에게 투자를 권유한 1억 원도 함께 흔적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상중이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투자대상이었던 이웃 도시의 건물은 매매용이 아니라 그곳을 터전으로 하여 다단계 조직이 운영되고 있었고 이 조직들이 이미 확정일자를 받아 우선권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건물이 계속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B와 그녀의 친구가 투자했던 돈은 P라는 다단계 회사의 자금으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B는 친지를 통해 알게 된 K법무사를 찾아왔다.

K는 우선 항소장을 제출한 뒤 B가 가져온 사건관련 문서와 1심 판결문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B의 근저당권등기보다 1달 늦게 10억 원의 채권으로 담보 부동산에 대하여 가압류를 집행한 D는 B외에도 이 농지에 B의 후순위로 근저당권을 설정한 다른 3명도 함께 피고로 하여 승소판결을 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원심의 판결이유에는 B를 포함한 전 피고들이 제대로 다투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원고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했으나 피고들의 반박은 법적, 논리적인 것이 아니었고 억울하다느니, 평생 모은 돈이라느니 하며 거의 감정적으로 호소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시가 10억 원이라던 담보대상 농지는 공시지가로 4억 원에도 미치지 못했고 감정인의 감정결과 6억 원이 채 못 됐다. 그러니까 감정가격을 기준으로 한다면 B의 근저당권 설정으로 A는 채무초과 상태가 되는 셈이었다. 결국 D에 대한 A의 채무가 존재하고 또 B에 대한 채무보다 앞섰다면 외견상 B의 근저당권 설정은 전체 채권자를 해하는 행위였다.

K는 이 사건에서 B가 사해행위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A의 B에 대한 기망행위와 재산편취 사실을 주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투자권유를 하면서 보여준 건물은 이미 타인이 우선권을 확보하여 빈껍데기였고 투자금이 다단계 자금으로 사용된다는 사실도 숨겼다. 한편으론 D에 대한 10억 원의 채무가 있고 그에 대한 담보로 농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속했음에도 이것을 숨기고 다시 B를 현혹시켜 돈을 가져갔으므로 이단의 고의를 입증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B의 명의로 다단계 사업에 사용된 3억 원의 투자를 취소하니 즉시 투자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A와 P회사에게 발송한 뒤 A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리고 K는 항소이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우선, 근저당권을 설정할 때 B는 D의 존재를 몰랐고 A와 D간의 거래사실도 몰랐으므로 B에게는 사해의 의사나 통정허위표시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둘째, 근저당권 등기를 할 때 A는 B로부터 받은 돈 3억 원이 있었으므로 무자력이 아니었던 점,
셋째, 근저당권 설정과 3억 원의 교부행위는 현실적 교환이었으므로 이 근저당권 설정으로 B에게 우선변제권을 준 것이 아니고 또한 D에게 피해를 준 것이 아니라는 점,
넷째, 근저당권설정 당시 D가 이 사건 토지에 담보를 확보하거나 채권의 존재를 공시한 것이 전혀 없었다는 점,
다섯째, B와 그의 친구들은 직장인이거나 자영업을 하고 있는 여성들이어서 부동산에 관하여는 잘 알지 못하였으므로 당시 이 부동산의 시가가 얼마이며 채무의 담보로 얼마나 많은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점,
여섯째, B가 A에게 돈 3억 원을 교부한 것은 기망에 의한 편취행위여서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사실을 순서대로 적었다.

D의 변호사는 B가 항소를 제기하자 역시 변호사를 선임하여 항소한 나머지 3명에 대한 소를 취하했다. 변호사 없이 항소를 한 B만 남긴 것이다. 자기들끼리 무슨 내략이 있는 듯 했다. D의 가압류보다 후순위인 위 3명은 B의 근저당권이 존재하는 한 별 가치가 없지만 만일 D가 B에 대하여 승소를 한 뒤 이 부동산의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임의경매를 진행했을 경우 가압류권자인 D와 그 3명이 동순위로 배당이 된다. 즉 항소심에서도 그 3명에 대하여 승소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인데 이들에 대한 소를 취하한 것은 서로 무슨 약속을 했다는 뜻이었다.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경찰에 고소한 사기사건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다. 재판에서 D가 패소한다면 A의 B에 대한 금전취득이 과연 편취행위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적어도 항소심의 결과를 지켜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뚜렷한 담보도 없이 10억 원이나 되는 거액을 거래한 A와 D간의 관계 및 그 사정과 동기의 파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인데 그들이 입을 닫으면 정확한 결론을 얻을 수가 없다는 점도 작용을 했다.

사실 이 형사사건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항소심에서 사해의 의사나 통정허위표시가 없었다는 입증을 위해서 제기한 것이었다. A의 유죄가 인정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조사결과를 항소심에서 원용할 수만 있어도 좋을 것이다. 이런 중에 K 법무사는 B에게 유리한 사실 하나를 찾아냈다. 담보대상 부동산을 중심으로 인근 부동산의 등기부 검색을 하던 중에 입지와 상태가 비슷한 인근 부동산의 최근 거래현황을 찾아냈는데 그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담보 부동산의 시가가 20억 원에 이른다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형사사건에서 A의 무혐의와 관련이 있지만 항소심에서도 절대 유리한 자료였다. D가 A에게 10억 원을 빌려준 동기가 어렴풋이나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K는 매매가격이 적힌 그 부동산들의 등기부등본과 위치가 표시된 지적현황, 그리고 일대의 컬러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근저당권설정 당시 A가 무자력이 아니었음을 주장했다. 이 가격이라면 D의 채권 상당부분을 변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인근에 무슨 사업계획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1심에서 실시했던 감정은 그러한 내용을 제대로 참작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항소를 제기한지 석 달 만에 마침내 판결이 나왔다. K가 항소이유서에서 주장했던 내용 중 3가지를 그대로 인용하여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B에게는 사해의사나 통정허위표시가 없었고, 근저당권은 기존에 존재하던 채권자 1명에게 우선변제권을 준 것이 아니라 실제 현금을 교부하고 그 대가로 설정했던 점, 그래서 당시 A는 무자력이 아니었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K가 찾아낸 인근 토지의 거래현황도 판결이유에 명시해 놓았다. 결국 B의 근저당권설정 등기는 사해행위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완벽한 승소였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이 되었고, 그 후 진행된 선순위 근저당권자가 신청한 임의경매로 B는 원금 3억 원과 이자 4천만 원을 배당받았고, 가압류권자인 원고는 1억 원 정도를 회수하는데 그쳤다. 경매절차에서도 입지의 특성은 무시된 채 진행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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