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강재 소개각종 소송강제집행 등인터넷등기등  기답변서게시판법률상담실영혼의 샘참  고유관기관업무관련



혹시 속이 답답해서 방방 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지…. 함께 휩쓸리면 절로 스트레스에 전염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날 법무사 K를 찾아왔던 대처승려 박 씨가 그랬다.
“수십 년 농사를 짓고 그 소출로 명줄 이어온 농진디 소유권이 공중에 붕 떠버렸다요, 글씨.”
연방 한숨을 푹푹 내뿜으며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난생 초면인 그에게 법무사 K는 마땅히 할 말이 없어 그저 제풀에 안정되기만 기다렸다.
“30년 전에 밭을 사서 마누라 앞으로 해 놓았는디 얼마 전 마누라가 시상을 버려 뿌렸소. 그란디 호적이 잘 못돼서 내 앞으로 할 수가 없다는구먼.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당가요?”
남의 사무실에서 그러고 있는 것이 스스로도 멋쩍었던지 오래잖아 박 씨는 들고 있던 대봉투의 내용물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맨 위에 상속등기신청서가 보였다. 등기신청을 했다가 되돌려 받은 문서였다. K는 또 남의 뒤치다꺼린가 싶었지만 때가 묻고 보풀이 일고 있는 문서 뭉치가 안쓰러워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신청서 표지에는 붉은 색연필로 ‘각하’라고 갈겨쓴 글씨가 보였고, 그 밑에는 좀 작은 필체로 ‘피상속인 전적지 연결 불가’라는 표시가 있었다.
K는 문서를 받아들고 먼저 제적등본을 펼쳐 보았다. 아, 괴발개발로 된 제적부였다. 언젠가 K는 일제시대와 해방 무렵 작성된 제적등본을 읽어주고 수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며 한 95% 정도를 한글로 옮겨준 것 같다. 의뢰인의 말에 의하면 상속사건에 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재판부에서 사건의 열쇠가 되는 제적부의 번역본을 제출하라는데 변호사는 그것을 원고인 자신에게 미뤘다고 한다.  
“변호사님이 좀 해주세요.”하며 부탁을 했지만 그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단다. 옛날 호적부를 작성하던 면서기들의 필체는 대체적으로 참 유려했으나 이 건처럼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도 읽어내기 어려운 경우가 꽤 있었다.
신청서 안에는 각각 본적이 다른 제적등본 5부가 있었다. 강원도 영월군청에서 발부된 2건과 충북 제천시청, 경북 안동시청, 그리고 전북의 부안군청에서 발행된 것 각 1건이었는데 그 호주가 모두 달랐다. 박 씨의 설명으로는 영월의 것은 장인과 처남이 호주이고, 제천은 처의 전남편 소생인 큰 아들이, 안동의 것은 처의 전남편이, 그리고 부안의 것은 자신이 호주라고 했다. 그 5개의 제적부 중 제천의 것은 필체가 날림이었다. K는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5개의 호적을 서로 연결시켜 보았다.

19살 처녀 김현규가 유순자가 된 사연

박씨의 처 유순자는 이름이 두 개이고 본적은 세 군데(연결성을 따지면 두 군데)였다. 즉 ‘원적’이라는 영월군청에 비치된 친부의 제적부와 오빠의 제적부에는 ‘김현규’라는 이름으로 출가하지 않은 채 각각 등재되어 있었고 나머지 3개의 제적부에는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호주의 처, 모로 등재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부안과 제천, 안동까지는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연결이 되었지만 안동과 영월과는 이름이 다를 뿐만 아니라 전적지 기재를 통해 연결 지을 수가 없었다. 제적등본을 앞에 놓고 박 씨가 더듬더듬 들려주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았다.
이 사건의 주인공, 즉 박 씨의 처 유순자(원적 이름 김현규) 할머니는 17살 때 6‧25전쟁을 겪었다. 강원도 영월, 부모 슬하에서 살림을 배우고 있던 그녀는 전쟁이 터지자 잠시 난리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큰오빠를 따라 얼떨결에 피란길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끌려가 낭패를 당할 만한 젊은이들이나 처녀들만 집을 떠났을 뿐, 대부분 주민들은 그냥 집에 머물러 있었다. 그럼에도 거리에는 피란민들로 북새통이었다.
오빠 손을 꼭 잡고도 그녀는 이미 넋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큰오빠가 원주 부근에서 국군의 검문에 걸렸다. 27살이었던 큰오빠는 바로 현역으로 징집되었고 그녀만 낯선 동네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난생 처음 고향을 떠났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조차 몰랐다. 며칠 동안 굶고 지내다 마을 입구에서 피란민을 상대로 밥과 술을 파는 이동술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북진하던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밀리기 시작하자 전쟁 내내 끄덕하지 않던 이동술집 주인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떼놈들한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며 피란짐을 쌌다. 그녀도 이동술집 주인과 함께 다시 피란 대열에 섰다. 그때 피란민의 진로를 안내하던 군인과 눈이 맞았다. 키가 작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지만 마음은 착했다. 그 와중에도 둘은 살림을 차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19살짜리 신부는 그 군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것을 하나씩 둘씩 마련해 나갔다. 그리고 임신도 했다.
그런데 휴전 무렵, 태중의 아기가 8개월째 되던 달에 남편이 전사를 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사내아이를 출산한 그녀는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물어물어 고향인 영월로 돌아갔으나 동네는 폭격으로 흔적조차 없었다. 가족들의 소식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군복에 달린 명찰을 보고 이름은 알았으나 아이의 친아버지인 그 군인의 생가가 어딘지 전혀 몰랐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 경북 안동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전쟁의 피해가 덜했다. 그녀는 거기서 석공 일을 하는 남자를 만나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동네 대서방에서 시키는 대로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유순자’라는 이름으로 혼인신고를 한 뒤 석공을 아버지로 하여 아이의 출생신고도 했다. 그런데 전국의 일을 맡아 떠돌던 석공은 병을 얻어 객지에서 병사를 하고 말았다.
이미 석공과의 사이에 딸 둘을 더 낳은 그녀는 아이 셋을 이끌고 또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떠돌고 떠돌다 이번에는 전라도 정읍 부근에서 대처승려 박 씨를 만나 다시 살림을 차렸다. 박 씨는 그녀가 너무 불쌍하여 그 가족을 자신의 핏줄처럼 아끼고 돌봐주었다. 그녀는 점차 지난 상처와 고뇌를 말끔히 잊어갔다. 둘 간에 사내아이가 하나 더 태어났다. 두 사람은 정읍을 떠나 경기도 000시에 정착을 한 뒤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하여 논도 사고 밭도 샀다. 박 씨는 그 명의를 모두 그녀의 이름으로 등기했다.

안동과 영월의 호적 ‘연관성 찾기’가 관건

아이들을 모두 결혼시킨 뒤 그녀 부부는 막내아들 내외와 함께 참으로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녀가 덜컥 대장암에 걸렸다. 소화가 되지 않고 배변이 시원찮아 병원에 갔더니 이미 말기였다. 전신에 암세포가 퍼져있던 그녀는 결국 회복되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 내외의 손을 꼭 잡고 눈을 감았다.
문제가 일어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등기를 대행하던 법무사가 불러서 갔더니 상속등기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이들의 본적이 각자 다른데다 유순자 할머니의 호적이 연결되지 않아 등기소에서 각하 결정이 났다는 것이었다. 각하라는 것이 뭔지 몰라도 하여튼 등기를 할 수 없다며 서류와 돈을 모두 되돌려 주었다.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기는 하겠는데 부부재산관계가 그렇게 복잡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몇 군데 다른 법무사를 전전해 봤지만 똑같은 대답만 들었다. 며칠 동안 서류를 앞에 놓고 걱정이 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박 씨는 다시 등기소 부근을 헤매다가 법무사 K의 사무실에 들르게 되었던 것이다.
법무사 K는 자신이 남들보다 많이 알고 유능해서 이런 사건을 맡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일이 없다보니 소일거리 삼아 손을 댄 것이었다. 사실 상속대상 부동산은 공시시가로 따져 보니 2천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보수표 대로 하면 최대 30여만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할 것 같았다. 박 씨는 아내와 함께 일군 재산을 꼭 회복하고 싶다며 방법을 찾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박 씨로부터 그간 사정과 그녀의 인생유전을 들은 뒤 K는 우선 안동시청으로 달려갔다. 안동과 영월 간의 관계를 잇지 못하면 이 등기는 불가능했다. 유순자 할머니가 안동의 석공과 결혼하기 전에 또 다른 자녀가 있을지도 모르므로 이 관계를 입증하지 못하면 사실관계야 어떻든 이 부동산은 영원히 유순자의 이름으로 남게 될 것이었다. K는 그녀에게 호적을 만들어줬다는 그 대서사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혀 얼토당토않게 호적을 만들지 않았다면 안동시의 제적부 어딘가에 그녀의 원적 기록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정말 시대가 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려면 관공서를 방문해 보라던 동료들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안동시청의 제적부는 생활민원실에서 모두 보관하고 있었는데 민원실장인 여자직원은 K의 설명을 들은 뒤 관련되는 제적부를 직접 뽑아서 열람대에 올려주었고 전산기록을 통해 ‘김현규’라는 이름을 죄다 출력해 주었다.
그러나 전산기록에 있는 김현규는 유순자나 영월 쪽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K는 해가 지도록 제적부를 1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뒤적이며 열람을 했다. 그러나 전 제적부를 모두 뒤적여 봐도 영월의 원적 주소와 관련된 김현규, 유순자라는 이름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서사가 불법으로 그녀를 호적에 올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헛걸음이었지만 친절한 직원들 사이에서 보낸 하루가 아깝지는 않았다.

유순자의 언니와 자녀들의 유전자 감식으로 마침내 호적 정정
허탕을 치고 돌아온 K는 박씨 가족들을 모두 불러서 가족관계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 과정에 서울에 유순자 할머니의 친언니가 한 분 생존해 있는 것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 할머니는 전쟁 전에 시집을 갔으므로 제대로 영월 호적에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분과 유순자 할머니의 딸에 대한 유전자가 일치하기만 하면 현 호적과 원적간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전자는 모계가 부계보다 더 정확하게 승계되기 때문이었다.    즉시 이모와 딸, 아들에 대한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노환으로 자리보전을 하고 있는 이모의 집으로 딸과 아들이 모여 함께 검사물을 채취했다. 다행스럽게도 일주일 뒤 받아본 유전자감식 결과서에는 3명의 유전자가 거의 일치했다.  
K는 이 결과를 가지고 신청인을 박 씨로 하여 영월지원에 가족관계등록부(호적) 정정 신청서를 접수했다. 김현규라는 신분을 회복한 것이므로 사건본인의 원적지가 원칙적인 관할법원이 되었다. K는 유순자(일명 김현규) 할머니의 출생에 관한 사실과 6‧25로 빚어진 그간의 상황, 혼인과 동거와 출산, 그리고 혼인신고와 출생신고 과정을 자세하게 언급한 뒤, 신청취지에는 영월호적에 있는 ‘김현규’의 성명란 주민등록번호를 유순자의 주민등록번호로 등재하면서 석공과 혼인한 사실을 안동 호적부와 동일하게 전사하고, 안동 호적에는 사건본인의 성명을 ‘김현규’로 정정하고, 영월에서 전입한 사실을 기재했다.
그리고 이때 출생한 자녀들의 모란에 기재되어 있는 ‘유순자’를 ‘김현규’로, 그리고 정읍 박씨의 호적에도 사건본인의 성명 정정과 전 호적을 기재하고 막내아들의 모란도 각각 정정하고 제천에 있는 큰 아들의 호적 중 모란도 각각 정정해 달라고 꼼꼼하게 기재했다.
호적정정 신청을 한 뒤 박 씨는 틈만 나면 찾아오거나 전화를 해서 결과를 묻다가 종내는 지쳤는지 포기했는지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왜 호적사건의 처리가 그렇게 늦는지 정확한 이유를 모르지만 꼭 개선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 호적(가족관계등록)사건도 등기사건과 마찬가지로 결정권을 일반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일반직원은 법원공무원교육원 교육과정에도 필수적으로 이 호적(가족관계등록) 업무를 배우고 있고, 또 그 분야에서 근무하며 전문적으로 연구하기도 한다. 이런 가사비송사건은 과감하게 사법보좌관에게 이관하는 것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정확히 8개월 만에 호적정정 허가결정이 나왔다. 신청취지대로 나온 결정이었다. 박 씨는 이 결정문을 받자마자 인근 읍사무소 호적담당 직원을 얼마나 닦달했는지 보름 만에 5군데 제적부와 가족관계등록부, 그리고 주민등록표를 모두 정리해 왔다. 비로소 유순자가 김현규로 완벽하게 정리된 것이다.
법무사 K는 새로 정정되고 정리된 상속관계서류를 갖추고 협의분할서를 첨부하여 협의분할에 의한 상속등기 신청서를 등기소에 제출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등기를 마쳤다. 처음 박씨가 K의 사무소를 찾아왔던 때로부터 거의 1년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K는 지금도 등기부등본과 등기권리증을 받아들고 싱글벙글하며 사무실을 나서던 박 씨의 모습을 가끔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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